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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 타밈 안사리 본문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 타밈 안사리

suha 2012. 8. 22. 10:06

언제부턴가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어릴 때도 로마인 이야기 이런거 재미있게 읽었지만 특히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최근 몇 년 사이인 것 같다. 아무래도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사람의 역사도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듯. 어떤 일이 발단이 되어 그 다음에 이렇게 저렇게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흥미롭다. 또 그게 사람이 나름 머리를 굴려서 뭔가 꾀하려 하는데 보통 마음대로 안되는 거 보면 재미있고. 학교 다닐 땐 국사나 세계사 시험 보려면 외워야 되는 게 너무 많아서 괴로워했던 기억이지만.. (암기과목에 약함) 차라리 서술형 문제 같은거면 좋을텐데 꼭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이라던가 'xxxx x층 석탑' 이런거 물어보는거 참 괴로웠다.

국사는 그래도 광복 이후 (이 부분은 내용도 워낙 간결했던데다 보통 학기말에 대충 넘어갔다) 빼고는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수능 볼 때는 문과 학생에게조차 세계사가 필수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계사는 무척 대충 가르치는 분위기였고 그나마 교과서 끝까지 다 가지도 않았던 기억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과학 선택 과목은 생물을, 사회 선택 과목은 경제랑 사회문화를 밀어주는 학교였다 (뭐 경제는 그렇다 치고 보통 화학을 많이 선택하는데 물리 화학 지구과학 세 과목을 몽땅 3학년 때 가르쳐서 과학이 9단위였고 세 과목 다 수능 전 까지 진도도 다 못나갔다 -_-).

어쨌든 그러다보니 세계사 교과서에 분명 언급되기는 했으나 대충 넘어간 부분이 꽤 있었는데..
초기 문명의 발상지를 가르칠 때는 분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먼저이고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 지역에 대한 얘기가 감감 무소식.. 아무래도 동양사에서는 중국을 좀 자세히 가르치는 편이고 서양사에서는 그리스-로마 에서 중세(여기도 좀 대충 가르친다)를 지나 르네상스-계몽주의-프랑스 대혁명 뭐 이런 식으로 쭉 이어간다. 중간에 알렉산더가 영토를 넓히더니 페르시아를 정복할 때는 그래도 페르시아란 나라가 있었나보다 하는데 나중엔 갑자기 오스만 투르크가 튀어나오는데 유럽의 상당히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세계1차대전 때까지만 해도 존재한다..?! 근데 이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서 나왔지?_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십자군도 주로 기독교 쪽 입장에서 서술을 했던 것 같고.
근데 뭐 학생도 별로 관심없고 선생님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진도 빼기 바쁘고 시험문제나 찍어주고.. 
사실 중국사도 삼국지나 무협지를 통해서 빈 부분을 상당 부분 채웠다고 생각한다 - -;
  
그 뒤에도 로마사나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은 좋아했고, '비잔티움의 첩자'를 읽은 후로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비잔틴 제국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언젠가 스페인 관광 책자를 읽다가는 스페인에 이슬람 문화가 번성했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한 적이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스페인의 이미지는 펠리페 2세 시절의 99.99% 친 가톨릭 성향이었다), 얼마 전 '내 이름은 빨강' 을 읽으면서는 한 번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냥 이야기만 따라갈 수도 있지만 이해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지식이 좀 요구되는 책이었달까.. 술탄은 어디서 들어봤는데 칼리프는 뭐하는 사람이며 페르시아랑 오스만 제국은 왜이리 역사가 얽혀있는가.. 등 이젠 잘 기억도 안나는데 어쨌건, 단어 하나씩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며 따라가기는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아 물론 내가 무식해서 그렇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으셨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이번에 여름 휴가 중 책을 안 가져온 P군이 복지수당도 쓸겸 책을 사겠다 해서 서점에 들렀다가 이 책을 봤고 전에 어딘가에서 이 책 소개를 본 기억이 나서 사도록 꼬드겼다. 물론 누가 봐도 재밌어 보이는 제목이고 책 소개도 그렇다. 그래서는 P군이 잠들고 나면 내가 몰래(?) 읽다가 집에 와서는 내가 더 앞질렀다는 핑계로 먼저 다 읽었다. 그 결과 요즘 잠이 많이 부족했음. 

한참 늦었지만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책은 중국과 유럽 사이에 있는, 그러나 주로 유럽쪽과 영향을 주고 받았던 북아프리카 ~ 중앙 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역사이다. 시기에 따라 좀 차이가 있지만 이슬람 교가 어느 정도 본궤도에 이른 후로는 이 지역은 이슬람 문화권이었다. 이슬람 교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이 지역들에서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왔는지를 중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읽다보면 이슬람교가 어떤 종교인지, 페르시아나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쇠퇴해갔는지,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이 지역에 어떠한 갈등이 생겼고 그 맥락이 어떤 것인지까지 시대순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지금은 이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로마 1차 삼두정치의 세 인물(케사르-폼페이우스-크라수스) 중 하나인 크라수스가 전쟁을 벌이다 죽었다는 파르티아도 이슬람 문화권의 나름 강한 국가였다. 난 이전까지는 페니키아 에트루리아 뭐 이런 계열의 이름이라 생각하고 그 동네 국가인 줄 알았다는.. 어쨌든 읽다보면 서양 세계사에서 언뜻 이름으로만 간단히 등장하는 국가나 사건, 지명들이 많이 등장해서 반갑다. 아, 그리고 만화 '히스토리에'의 배경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절주절 말이 길었지만 세계사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 중 일부를 이해까지 시켜가며 잘 채워주는 책이었다.
재미있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이슬람에 대해 평소 궁금한 점이 있었다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저자의 배경상 (저자는 아프가니스탄의 유서깊은 이슬람 가문 출신이고, 64년 이후로 미국에서 살았지만 동생은 근본주의 이슬람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이슬람의 입장에 약간 치우쳐 있을 수도 있고 언뜻 그런 느낌이 드는 부분들은 있으나 그것은 지금까지의 세계사를 서양인 입장에서 기술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오히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서양의 시각에 치우쳐져 있던 우리의 인식이 좀더 균형잡힐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12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