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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책

suha 2010. 12. 13. 19:29
12월 13일 현재 61권을 읽었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하면 양도 적고, 가벼운 책들도 많다. 올해는 꽤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나 할까. 확실히 바쁘기도, 피곤하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던 상반기에 좀더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그때는 스릴러나 만화책 정도를 겨우 읽었다.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자기계발 서적이 아닌 실용서 - 요리책이라든가, 인테리어 책이라든가 - 의 비중이 꽤 높았다. 뭐 아무래도 그런 쪽도 관심의 범주에 포함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하다. 한편으로는 별 생각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어서 더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쉽게 넘어가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많이 포함되었는데도 61권이라고 생각하면, 올 한해는 정말 많이 못 읽었구나.  

소설은 맘에 드는 시리즈물이 꽤 많았는데, 그것만으로도 10권이 찼다. 먼저 첼시 케인의 상처-낙인-파국 시리즈. 좀 이해 안되는 구석도 많고 변태 사이코 패스-.- 같지만 (같은게 아니라 사실 맞다) 궁금한 이야기랄까. 그 다음으로 발견한 재미있는 시리즈는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 원래 로마사도 좋아하는 데다 이름만 듣던 역사 속의 인물들이 구체화되고 (키케로는 Rome에서도 그래서 실망했지만 정말 상종하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이야기도 탄탄하다. 국내에는 4권까지 번역되었지만, 이미 출판된 게 10권이 넘고 작가도 아직 살아 있으니,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과 같은 아쉬움은 없을듯!! 그 외에 계속 번역해 주길 기대하는 시리즈는 딕슨 카의 추리소설 시리즈 (밤에 걷다 - 유다의 창 - 아라비안나이트 살인). 기대만빵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3권 모두 L군에게 빌려 읽어 좀 찔리지만... 코난 도일이나 크리스티 아줌마의 약간은 고리타분한 추리소설이나 현대 미국의 꼬고 또 꼬느라 지루해지는 스릴러들에 지쳤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이다. 복잡하게 꼬지 않아 깔끔하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옛날 이야기라고 도맷금으로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 이야기들이다. 

비소설중에서는 깊이있는 책을 워낙 못 읽기도 했지만, 유독 한 권만이 기억에 남는다.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가 그것이다.  행동하는 양심, 미국의 양심이라는 하지만 의외로 본래 직업은 언어학자라는 노엄 촘스키.  촘스키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알려한 적은 없었다. 뭐 언제라고 세상이 암울하지 않았던 적이 있겠냐만은,  이 울적한 세상에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나 알고 싶었다. 그래서 촘스키 이름이 들어간 책들 중 그나마 좀 접근하기에 쉬울 것 같은 책을 골라 보았다.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또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가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쉽게 풀어주니까 막상 읽으면  뻔해 보이지만  누가 말해주기 전에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말들, 그리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옳다는 것, 그것을 직접 자기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존경스러웠다. (사실 나는 별거 아닌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항상 주저하지 않던가!) 좀더 촘스키란 인간을 알고 싶어졌다.  검색해보니 촘스키란 이름이 들어간 책은 아주 많아서, 내가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는 사실이 반가울 따름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읽고 싶은 책'  리스트는 내년, 내후년, 그 후 몇 년까지 한눈을 팔지 않고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정도로 길다. 물론 그 리스트에 있는 책들이 다 엄선된 것은 아니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들어간 책들도 있고 전에 좋았던 작가의 책이란 이유로 들어간 책들도 있다. 하지만 그 리스트에 있던 책 이름에 줄이 그어지는 속도보다, 그 리스트에 다른 책이 추가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런 것이 싫증을 잘 내는 내가 책읽기를 계속 즐겁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물론,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나 금전적으로도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취미-라기보다는 즐거운 일-이 책읽기인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피부에 와닿는다.)  오늘 읽고싶었던 책이 내일 사실은 내가 싫어하는 류의 책으로 밝혀지더라도, 그런 일을 몇 번 되풀이 한다 하더라도 그 길고 긴 목록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책들을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이런 책을 읽어볼까, 내년에는 또 어떤 책을 읽고 싶어질까- 하는 기대감에 올해가 다 가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