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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본문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suha 2009. 5. 13. 13:00

목수정이란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TV에서 본 다큐멘터리였다. 주로 ?살 차이나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으며 살고 있다- 와 '문화정책' 이라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분야를 프랑스에서 공부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쓴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읽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쯤 '정명훈과 국립오페라단 사건' 에 관련되었던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처음에 읽었던 기사에 그녀의 이름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스쳐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정명훈씨 관련 사건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정명훈을 욕하다가도 목수정씨에 대해 말이 많았던 건, 그녀가 정명훈의 언행을 나름 권력을 가진 자의 만행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가부장적인 한국 남자의 행동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글루스 같은데서도 화제가 되었던 것 같은데, 상당수 남성들의 반감을 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페미니스트' 까지는 아닌데, 가부장적 사회에는 불만이 많은 한국 여자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한국 여자들에게도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라서, 나도 가끔 그 사람들의 글을 읽거나 말을 듣고 있으면 거부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거부감의 원흉은 사실 그들의 주장하는 내용이나 문제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한 말투나 특정용어 때문일 경우가 많다. M모당처럼 이름뿐인 - 아니 이름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럽고 자기들과 극보수주의자들만이 부르는 -  '진보'의 개념 말고, 진보주의자들도 가끔 사람들의 반감을 사는데 그럴 때의 대부분에도 이유는 그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 노력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게 되는 경우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소수자가 자신의 의견을 펴는 과정에서 그러한 일이 수반될 수도 있다고 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약간의 부담감도 있었지만 오히려 궁금하기도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건 아니건, 인생의 선배라는 점만으로 배울 것도 많았고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이지만 내가 간과하며 살아왔던 것들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나의 취향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편의나 효율을 거의 가장 우선적으로 여기는 나의 사고방식은 내가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의 가치를 답습했기 때문인지....그런 것도 돌아볼 수 있었다. 한번쯤 더 읽어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될 책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편의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나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2009년의 책 그 25번째

+ 친구에게 '너는 결혼하고나서 다른 사람의 연애 이야기 같은걸 더 많이 읽는 것 같다' 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책은 연애 이야기가 주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그리고 결혼하고나서 그런거 많이 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