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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suha 2009. 3. 28. 22:23
진중권의 이매진10점





진중권 씨가 <씨네 21>에 연재했던, 영화에 대한 담론을 엮은 책. 담론이란 말이 한자로 뻔하긴 하지만 왠지 낯설어서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 이라고 한다. 그냥 말 그대로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쓴 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처음에 이 코너의 기획의도는 '영화의 바깥에 있으면서도 안쪽으로 간섭을 하는 글쓰기' 였다고 한다. 여러 영화들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 기법이나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 지에 대해 글쓴이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는 게 주된 내용이다. 철학이나 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해하기에 별로 어렵지는 않다. 물론 나는 무식한 이공계 학생이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기보다는 글의 맥락상 대충 이해하는 정도로 그쳤다.

어릴 때부터 뭔가를 새로 접하는 데 있어 나의 취향은 같이자란 오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새롭게 접하는 무엇인가는 나가서 내가 직접 찾은 무엇보다는 집에 굴러다니는 뭔가로부터 시작될 때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몇 번 본 영화 잡지는 <스크린> <로드쇼> 등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뭔지 모를 말들이 가득한 (지금은 폐간된) <Kino> 가 참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다. 다른 잡지들이 흥행성이 있는 영화들을 주로 다루고 배우나 영화의 컬러 화보나 수박 겉핥기식의 기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면, 키노는 흑백에 글자만 빽빽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영화 자체에 대해서든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든 상당히 진지했다. 키노를 보다보니 언젠가부터 '즐겁기만 한' 영화를 보면 죄책감이 느껴지곤 했었고, 의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고, 의미를 따지기를 좋아했다. 특히 내용의 의미를 따지기를 좋아했는데, 이점은 학부 때 '시각매체 예술론' 이란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수업을 듣고 충격을 받은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영화에 대해서 시각적인 것보다 내러티브가 가장 주된 관심사인 인간이다 -_-
그런데 학부 1학년 때인가, 나는 두 친구로부터 대단히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재미로서의 영화' 를 보는 일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_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아직도 그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영화를 (좀더 나아가서 지금은 책도) 그저 즐기는 대상으로만 볼 수 있다는 건 가끔씩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해서 그 친구들에게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 그 둘은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진중권의 이매진' 을 읽으면서, 본 영화도 있고 보지 않은 영화도 있었지만 찾고 싶어했던 의미를 누군가 대신 열심히 찾아주고 설명해 준다는게 참 좋았다. 저런 칼럼이 계속 연재된다면 누군가는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접하고, 누군가는 가끔씩 진지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2009년의 책 그 14번째

http://pinkishcat.cafe24.com/t
2009-03-28T13:23:40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