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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 The ruins

suha 2008. 6. 1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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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어딘가에 (아마 창세기가 아닐까 싶다) 바벨탑을 건설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학 기술도 발달(나름대로;?)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 인류는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는 높은 탑을 쌓으려고 한다. 어릴 때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왜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 것이 신에 대한 불경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고, 지금도 그냥 쌓고 싶어할 수도 있지 않나 싶지만 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치도록 하자. 어쨌든, 그에 신이 화를 내며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의사소통에 의한 혼란과 공포를 머리에 계속 떠올렸다. 

책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멕시코에 놀러간 두 쌍의 미국인 커플이 휴양지에서 한 독일인과 세 명의 그리스인을 만나게 되고, 독일인의 동생을 찾으러 가기 위해 +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고고학 발굴 현장인 정글로 가서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독일인-미국인은 의사소통이 되지만, 그들은 그리스인과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마야인들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계속 관심을 갖고 읽고 싶어 하고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내가 스릴러를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이다. 살펴본 여러 광고나 서평에는 '정글에서의 초자연적인 공포'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나왔다. 물론 배경은 멕시코의 정글이고, 자연의 신비함과 그로 인한 공포가 주된 내용이기는 하다. 그런데 나에게 다가오는 호러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공포를 끌어낼 '무지함'의 요소는, 광고에서 강조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라기 보다는 '의사소통의 부재'였다. 이들이 마야인과 의사소통이 되었다면, 아니면 하다 못해 그리스인과라도 의사소통이 되었다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훨씬 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저 신비한 자연이나 자연재해보다는 인간사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음모와 암투가 더 끔찍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네 가지 언어 (사실 독일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을 사용하는데도 의사소통이 이렇게 잘 되지 않아서 을 정도라면, 바벨탑을 지으려던 당시의 인류는 얼마나 큰 혼란을 겪었으려나. 하긴 일상 생활에서만 해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생기는 오해가 얼마나 많은지.   

500쪽도 넘는 긴 이야기이고, 처음부터 진행되는 방향이 뻔한데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는 건 이 책이 꽤 재미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호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큰 감동은 없었다. 일단 난 '뭔가 알 수 없지만 사람이 죽어나가고 두려움이 만연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다음부터는 '호러 스릴러' 따위의 나를 현혹하는 말에는 넘어가지 않겠다 -ㅁ-.

그렇지만, 전통적인 호러 장르를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싶다. :)

2008년의 책 그 82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