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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언

suha 2007. 1. 11. 01:24

이 책을 갖고있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며칠 전 겨우 펴들기 시작하여 금새 읽어버렸다. 사실 요며칠 사이의 수면부족은 갑작스레 부과된 일들과 새롭게 벌인 일 때문도 있지만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피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이런 류의 책은 읽다가 덮기가 너무 힘들다. 내가 책을 읽느라 날이 밝아오는 것을 처음 본 건, 중학교 1학년 때 '장미의 이름'을 읽으면서였는데 물론 그 때처럼 어렸거나 다음날이 쉬는 날이라면 상관없겠지만 평일에 새벽까지, 그것도 흡혈귀를 다루는 이야기를 읽고서 침대에 누워 잘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나면 무척 피곤하다.
방금 위에 썼듯이, 그리고 다들 알고 계시듯이 이 이야기에는 흡혈귀가 등장한다. 좀더 제목을 자극적으로 붙이려 했다면 '드라큘라' '뱀파이어' 등으로 붙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책의 제목은 '히스토리언'이다. 다빈치코드에서 기호학자가 등장했다면, 이 책에는 역사학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이 책의 내용을 몇자로 요약해본다면,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드라큘라를 추적하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추적하는 사람도, 드라큘라 아저씨도 책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기 그지없어서 주변에 있는 몇명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조금은 공감했다. 그런데 인간의 기록에 근거하여 조사하는 과정을 보면서, 기본적으로 내 전공의 연구방식은 문헌이 아닌 material에 근거하기 때문인지 인간에 의해 쓰여진 것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예전에 잠깐 언급했던 reference의 오염문제도 다시 생각났다.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어쨌든 여기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매우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은 다른 스릴러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인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내용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편지로 알려주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쓴 사람은 기억력이 무지하게 좋은건지 매우 상세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대충 다뤄진다는 느낌은 없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여러 장소나 역사속의 여러 인물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매우 자세하고 사실적인것처럼 보여서, 이 책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쓰여졌다는 것이 마음에 무척 와닿고, 그 장소나 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마저 느껴질 정도다. 특히 부다페스트나 이스탄불의 시가지에 대한 묘사는 무척 생생해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주었다.
읽는 동안 무척 즐거웠음에도, 결말이 약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요즘 나오는 이런 스릴러류들의 대부분이 결말이 무척 허술한 경향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유주얼 서스펙트'를 따라갈자가 없는 것처럼 '장미의 이름'을 따라갈만한 것이 없는 것일까. 모르겠다, 이미 섭렵한 스릴러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이렇게 역치가 높아진 걸지도....장미의 이름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별 감흥없을지도..;
약간 삐딱하게는 드라큘라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지식인 계층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짜증스러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여행가고싶은 마음만 엄청나게 커져버려서 걱정이다.

2007년의 책 그 세번째